인터뷰 뉴스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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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도자기 공방 지호락 대표 김소영작가를 만나다!지호락을 소개해주세요. 알知 좋을好 즐거울 樂으로 아는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을 능가할 수 없으며 좋아하는 사람이 즐기는 사람을 능가할 수 없다. 모든 일을 할 때 그리고 작업을 할 때 그리고 저의 공방에 오신 분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이 모든 행위를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렇게 공방 이름을 짓게 됐습니다. 지호락 클래스를 소개해주세요. 지호락은 도자기공방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저희 클래스로는 원데이 클래스, 정규 클래스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핸드빌드라고 해서 손으로 직접 빚을 수 있는 프로그램 하나와 전기물레를 통해서 원심력을 이용해서 그릇에 성형하는 물레 클래스가 있고요 정규클래스는 원데이에서 할 수 없는 심화 과정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핸드빌드 수업이나 물레수업에서 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더 발전해갈 수 있는 클래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원데이 클래스는 한 시간 반 이라는 시간 안에 한 작품을 완성을 해야 되기 때문에 저희가 정해놓은 프로그램을 통해서 클래스를 진행을 하게 되어 있고요. 아까 말씀드린 핸드빌드 수업 그 다음에 그 초벌이라고 해서 그림 그리는 수업, 이 정도로 수업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물래 클래스는 전기 물레의 원심력을 이용해서 정교한 그릇의 형태를 만들어 보실 수 있고요. 그릇을 한, 두 개 정도 작품을 완성하여 꾸며보는 활동을 하실 수 있습니다. 원데이 클래스를 통해 물레의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작품은 한 두 개 정도 완성하실 수 있습니다. 지호락은 단체체험도 가능하고요 학교 및 기업, 관공서등도 출강하고 있습니다. 도자기의 매력을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도자기에 매력은 흙이라는게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재료인 것 같습니다. 흙을 만지면 손가락의 감각의 뇌로 전달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어르신 분들께는 치매 예방에 좋으며 아이들에게는 창의력 발달에 좋고 중년층, 청년층에게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흙작업을 하시다보면 알 수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게 참 매력이 있는 작업이에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작품이 완성되서 나와서 자신이 직접 쓸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저는 참 도자기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호락 공간 소개를 해주세요. 지호락이라는 이 공간은 스튜디오 및 쇼룸 공간으로 운영되어지고 있고요 한쪽에서는 클래스를 들을 수 있는 반면에 또 한쪽에서는 작가가 직접 빚은 생활자기나 오브제들을 구매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대표 인사말 제가 지호락이라는 공방을 운영한지가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그 8년 동안 많은 노하우가 쌓였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느 누구보다 친절하고 즐겁게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는 부산시에서 작가로도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개인전도 꾸준히 하고 있고 단체전도 꾸준히 하고 있고요. 그 기반을 바탕으로 여러가지 생활자기나 오브제들을 만들고 있어서 아무래도 소비자분들에게 그릇도 생활자기도 하나의 작품으로 선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호락 공방 많이 찾아주시고요. 공방에 찾아오셔서 즐거움을 안고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문의 - https://instagram.com/jihorak_?igshid=MmU2YjMzNjRlO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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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조각가이자 퍼포먼스 작가 성백, 통영 크레이티브 트리엔날레 전시 감독 맡아조각가이자 퍼포먼스 작가로 활동하는 성백작가가 이번 통영 크레이티브 트리엔날레의 전시 감독이자 전시 작가로 참여한다. 통영 크레이티브 트리엔날레는 통영 국제 트레엔날레에 맞춰 경남의 청소년들을 위한 예술축제로 통영RCE 세자트라 숲에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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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진 도자기에 생명을 불어 넣는 작가 - 서명진 인터뷰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도자기 수복 기법으로 개인전을 하고 있는 서명진 작가를 만나 보았습니다.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머지 전시장에는 파손된 파손되거나 결손되어 상처 난 도자기를 생 옻을 이용하여 수리한 작품들로 가득하였습니다. 이러한 도자 수복기법을 킨츠키라고하는데 작가에게 전시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들어 보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미술교육 서양화를 전공으로 졸업하고 현재 부산에서 도자기 작업실을 운영 중인 서명진입니다. 인터뷰 중인 서명진작가 Q. 킨츠키라는 분야라고 해야 할까요? 저에겐 다소 생소한 작업인데요. 간략하게 킨츠키에 대해 설명을 해주신다면? A. 킨츠키는 생 옻을 이용하여 깨지거나 파편이 사라진 도자기를 수리하고 금, 은 등을 이용한 장식기법을 더하여 완성하는 도자기 수리 기법입니다. 과잉생산 시대에 금방 쓰임새를 잃고 쉽게 버려지는 파손된 도자기들을 아름답게 재탄생 시키고 새로운 용도를 가질 수 있도록 합니다. 중국에서부터 시작된 기술이지만 현재 일본의 기술로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킨츠키’라는 단어 역시 일본어로써 한글로 표현하면 금선(金線)이라 할 수 있어요. 옻을 이용하는 방법 외에도 도자기 수리 기법은 다양하게 남아 있으며 금속 못을 이용한 수리 기법, 금속 땜을 이용해 수리하는 기법 등이 있습니다. 전시장의 대형 달항아리 - 항아리 입구를 수리 하였다. Q. 서양화 전공을 하셨다가 현재의 킨츠키 작업을 하시게 됐는데,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처음에 멋모르고 들어간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을 때 작업은 즐거웠지만, 저의 머릿속에서는 항상 ‘그래서?’라는 질문이 계속해서 맴돌았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최대한 회화로 담아내려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보는 것으로만 끝나는 벽걸이 회화로만 남게 되는 부분이 늘 아쉬웠습니다. 그러면서 내 작업이 어떻게 되기를 원하는지를 생각했고요. 졸업 후에는 공간예술을 공부하려고 유학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때 회화 이외에도 영상, 페이퍼 아트, 공예, 조형, 판화 등의 다양한 예술적 시도를 했습니다. 대학에서 처음 접했던 도자 작업이 좀 더 진지하게 발전되었던 발판이 된 시기였죠. 그러다 우연찮게 도자 작업이 직업적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었어요. 만 5년을 한 공방에서 일하다 작년에 개인 작업실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개인 작업에 몰두하면서 더 깊게 고민하게 된 ‘쓰임’에 대해 나름의 해답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문제가 없음에도 버려지는 것들, 깨어져서 버려지게 되는 것들, 사용은 하지 않지만 버리지는 못하고 쓰임새를 잃어버린 것들. 여러 사연이 담긴 도자기들을 보면서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을 스스로 찾으려 했던 것이 도자기 수리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Q. 작가님의 평소 작업 과정이 있다면? 보통 어떤 식으로 작업이 시작되고, 진행되나요? A. 처음에는 파손 부위를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파손된 방식과 정도를 파악한 뒤 수리 과정과 기물에 따른 특이 사항을 체크해야 합니다. 수리하면서 다른 파손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니까요. 그 뒤에 수리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옻 풀을 이용하여 파손된 부위를 붙이고, 결손된 부위는 메꿉니다. 여러 단계의 사포질을 거치면서 생칠과 주칠을 올린 후 금 혹은 은, 주석 등을 이용하여 마무리 장식을 합니다. 이는 굉장히 단순화하여 설명드리는 거라 실제로는 같은 단계를 여러 번 반복하고 옻이 건조되는 시간 등을 지켜보면서 작업을 해야 합니다. 저는 킨츠키 수리 과정에서 중요한 부분 중 하나로 옻의 마름 정도를 제대로 파악한 뒤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옻의 특성상 독성이 강하며 특정 온도와 습도일 때 가장 잘 경화됩니다. 이를 잘 이해하고 작업해야 작업을 원만하게 진행할 수 있어요. 또 다른 킨츠키의 특징 중 하나가 매우 섬세한 작업이라는 것입니다. 일본 특유의 섬세함이 과정 마디마디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섬세한 기술적 특성과 작업적 분위기를 잘 살리는 것 역시 작업 과정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옻의 속도에 맞춰 작업하고 섬세한 손길로 작업하다 보면 작업시간이 꽤 많이 걸립니다. 하나의 기물을 수리하는데 짧게는 2~3주 혹은 기물의 크기나 파손 범위에 따라 한 달이 넘게 걸릴 수 있습니다. 서명진 작가의 작업 공구들 Q. 킨츠키 작업을 의뢰받는 경우도 꽤 있다고 들었는데, 작업을 하시면서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나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제가 처음 의뢰를 받은 작업이 자사호 뚜껑 수리였는데요, 당시 의뢰자분이 보이차에 입문하고 처음 구입했던 자사호의 뚜껑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비싸거나 오래된 물건은 아니지만, 추억이 담긴 물건이라 하셨습니다. 수리 비용이 구입 당시 자사호의 가격만큼 나왔었는데, 당신의 첫 다완이라 오래도록 함께 하고픈 마음을 담아 수리를 맡겨주셨어요. 다른 의뢰 중에는 친정어머니께서 취미로 만들어 떠맡기듯 따님에게 주신 큰 도자기 접시가 있었습니다. 댁에 그릇이 너무 많아 처치 곤란이라 하시면서도 친정어머니가 주신 그 마음은 외면하기 어려워 저에게 대형 접시 수리를 맡겨주셨습니다. 의뢰자께서는 처음으로 도자기 수리를 경험하는 거라 마무리를 금으로 할지, 은으로 할지 고민을 많이 하셨습니다. 결국 저한테 일임해 주셨어요. 저는 좀 더 관리가 편하고 당시 그릇과 가장 잘 어울리는 분위기라 판단한 주석으로 마무리해드렸더니 굉장히 만족하신다는 후기를 주셨었어요. 이런 후기들이 늘 뿌듯하고 감사한 순간들로 남습니다. Q. 이번이 작가님의 첫 개인전으로 알고 있는데요, MERGE?를 첫 개인전 장소로 결정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A. 이번 전시는 부산문화재단 <실패해도 괜찮아> 프로젝트를 통한 후원으로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프로젝트 참여가 확실시됐을 때부터 전시장을 많이 찾아보고 다녔었어요. 저는 전시가 가능한 날짜와 적당한 전시장 크기, 전시 관람이 가능한 유동 인구에 대해 나름의 기준이 있었습니다. 많은 곳에서 제가 원하는 날짜에 전시를 진행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으셨고, 전시장이 너무 작거나 너무 크거나 또 너무 구석이라 찾아오시기 어려운 곳들이었습니다. MERGE?는 부산대학교 번화가 주변에 위치하여 인구 통행도 많고, 여타 다른 개인 복합문화공간이라고 지칭하는 곳들에 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전시를 꾸준히 진행한 이력이 있었다는 점이 매우 긍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더불어 이곳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실제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시고 레지던시를 운영하며 작가와의 소통을 오랫동안 해보신 분들이셨어요. 작가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과 관심을 가지고 운영하신 공간이라는 점이 처음 전시를 진행하는 저에게는 신뢰로 다가왔습니다. Q. 첫 개인전에 대한 작가님의 소감과 개인전을 준비하시면서 어려운 점이 있으셨다면? A. 처음이라는 것에서부터 오는 혼란과 불안이 제일 어려운 점이에요. 작업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디테일하게 신경 써야 하는 부분들이 참 많더라고요. 물론 코로나가 최대 변수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 전시의 목적은 도자기 수리를 일반 대중들에게 최대한 많이 알리는 것인데 이를 위해 코로나 시국에 맞은 전시 설명을 대면 혹은 비대면 방법에 대해 고찰하고 있습니다. 가능한 관람객분들을 가까운 거리로 만나 도자기 수리에 대한 작가와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질까도 했는데, 이보다 더 유연하게 대처 가능한 방안들이 있지 않을까 하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시시각각 코로나 상황이 변하고 있고 이에 따른 불안감이 전시 당일에도 이어질까 걱정되지만, 최대한 현재 상황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여러 플랜을 가지고 준비해 보려 합니다. Q. 작가님만의 작품 키워드가 있다면요? A. ‘쓰임’과 ‘화합’입니다. ‘유용한’ 쓰임, ‘조화’와 ‘조합’으로 풀어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회화 작업을 할 때도 이 작품이 어디서 어떤 쓰임이 있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었고 현재 하는 도자 작업 중에서도 언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를 고민하면서 작업합니다. 언제 쓰는가?, 어디서 쓰시는가?, 어떻게 쓸 수 있는가?, 누가 쓰는가?, 왜 사용하는가?, 무엇을 재료로 사용하는가? 등. 이렇게 육하원칙을 ‘쓰임’에 대합해 풀면 제가 작업할 때 임하는 생각을 엿보실 수 있을 거예요. 또 제 작업은 여러 가지 재료를 ‘조합’하여 완성하는 작업입니다. 도자기를 만들기 위한 흙에서부터 수리 작업을 위한 옻과 금속 재료들, 유리 조각이나 돌 등이 ‘조화’를 이뤄 완성됩니다. 전혀 다른 성질의 재료들이 ‘화합’하여 쓰임을 가진 하나의 형체로 완성되는 과정 자체가 제가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저의 키워드입니다. Q. 앞으로 작가로서의 작품 계획은 어떤 것이 있으신가요? A. 저는 저의 흥미와 호기심을 원료로 하여 저의 생각과 감정을 쓰임이 있는 형태로 현실로 재현에 내는 것이 제 작업 세계라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을 위해 다양한 재료와 방법들을 가지고 회화와 입체, 글과 드로잉, 음악과 행위 등으로 경계를 넘나드는 작품을 하려 합니다. 저는 스스로를 ‘잡종’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전공은 회화인데 현재 하는 일은 도자 공예고, 이번 전시의 경우에도 도자계에서는 비주류로 여겨지는 도자기 수리 작업인데다, 그 작업에 쓰이는 재료도 전통 재료가 아닌 현대 재료들, 이를테면 유리나 금속, 돌조각 등을 마음대로 갖다 붙이는 작업이잖아요. 아주 오랫동안 도자기를 업으로 하시던 분들이 보시면 이게 무슨 도자기냐고 역정을 내실 지도 몰라요(웃음). 하지만 저는 도자기든, 유리든, 그림이든, 음악 혹은 글이든 저를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라 여기고 작업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이 다음 작업의 메인 요소가 될지는 저도 확신하지 못해요. 다만 앞으로 저의 작업들은 변함없이 쓰임에 대해 열렬히 고민하고 다채로운 것들이 조화롭게 엮어진 작품들일 겁니다. Q. 이번 전시를 보러 오신 관람객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상처와 부족함을 아름답고 우아하게 채워 넣을 수 있다는 것은 도자기 수리에도 적용되고 우리 인생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소중하게 쓰이던 물건이 이가 나간다고 갑자기 재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상처가 생겨도 더 아름답게 발전할 수 있다는 것. 이를 통해 더 단단해지고 더 성장할 수 있음을 눈으로 보고 느껴 주셨으면 해요. 또 찾아와 주시는 관람객분들께서도 저와 함께 ‘쓰임’에 대한 고민을 하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새로운 것에 집착하고 있지는 않은지, 너무나 쉽게 외면하고 버리지 않는지 다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더불어 공예와 예술이 다르지 않음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공예를 그저 기술로만 보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공예 안에 포함된 무한한 예술성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바쁘신 와중에 또 코로나 시국에도 전시를 방문해 주신 모든 분께 사랑과 존경을 담아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작가 인터뷰] 서명진 <Re-Born Kintsugi 리 본 킨츠키>|작성자 openARTs spaceMER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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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감이 꿈틀대는 이상세계를 회화로 구축한 ‘육감도’ 건설자, 이혁발행위미술에 관한 책을 4권이나 쓰고, 회화, 설치미술, 행위미술, 사진 작업을 활발하게 하고 있는 이론 겸비, 행동하는 미술인 이혁발 작가를 만나 보겠습니다. Q-코로나가 번성하는 이때에도 참 열심히 작업하시는군요. 3월에 안동, 5월에 부산, 그렇게 개인전을 2번 하셨는데, 9월에 서울에서 개인전을 또 하신다고요? A-네, 이번 9월 8일(수)부터 12일(일)까지 인사동의 경북갤러리에서 16번째 개인전을 합니다. 육감적인 이상 공간 ‘육감도’ Q-‘육감도’라는 주제로 전시를 하시던데, ‘육감도’라는 게 무엇인가요? A-이번 주제는 <몰랑몰랑 육감도>입니다. ‘육감도’는 제가 만든 단어이며, ‘육’자는 여섯‘육’이며 고기‘육’자이고, 감은 감각‘감’자를 쓰고, ‘도’는 그림‘도’이며 섬‘도’자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육감적인 살들이 접촉하고 어울렁더울렁 하는 건강한 이상향’ 같은 것입니다. 2018년 개인전 때 도록에 실은 일부분을 소개합니다. 이것으로 육감도에 대한 이해를 충분히 하시리라 생각됩니다. 따스한 햇살을 받아 투명한 분홍색을 뽐내는 여린 꽃잎의 속살 같은 보송보송하고 야몽야몽하며 더없이 아름다우며, 한없이 예쁜 그런 이상적인 공간 육◾감◾도.... 또한, 곤충의 더듬이 같은 예민함으로 풍성한 감각의 바다에 흠뻑 빠지되 자아가 살아있는, 주체적 삶을 영위하는 공간 그리하여 삶 자체가 예술같이 아름다우며 행복이 철철 넘쳐나는 그런 공간 모든 생물의 번식 욕망과 그 감각의 형상화 Q- 여체, 식물 같기도 하고,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동물 같기도 한 이 형태들은 어떻게 생겨났나요? A-자연에 가까이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가 식물들의 엄청난 번식력이었어요. 이쁘장한 꽃들의 그 엄청난 번식력, 땅속에서 날카롭고 뾰족한 뿌리로 뻗어 나가는 잔디의 모습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고 놀라웠죠. 자두나무도 3갈래로 끊임없이 뻗어 나갑니다. 조용히 서 있는 듯한 모든 식물이 온갖 방법으로 번식에 온몸을 불사르는 것을 알았죠. 인간의 욕망도 본능적인 번식력의 발현인 것이죠. 이 형상들은 인체를 기본으로 하지만 모든 생명의 번식 욕망과 그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본능적 감각을 형상화한 거죠. 감각이 살아있는, 싱싱하고 행복한 공간인 이상향 속에 사는 이 생명체들은 내 58년 삶의 경험과 35년 화업이 녹아있는 결과물이죠. 일정한 굵기의 선이 뿜어내는 힘 Q-작품에서 입체감을 주지 않고 선만으로 형태를 표현하네요. 선이 중심이 된 작업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그 전엔 선으로 된 작업도 붓으로 그렸고, 형태에 그러데이션이나 색조 변화로 풍만감을 주었죠. 그러나 일정한 굵기의 선으로만 그려진 그림이 훨씬 더 강한 힘을 내뿜는다는 걸 자각했어요. 그래서 마커를 사용하게 됐죠. 선은 그것이 얼마나 빠른 속도와 강한 힘으로 그려졌는지 관객들은 알아차릴 수 있어요. 일필휘지의 기운생동이 그대로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이죠. 또 선으로만 된 그림은 라디오의 소리처럼 한 가지만 던져주는 것과 같죠. 다 주지 않으므로 오히려 더 큰 품이 생긴다고 봐요. 시청각을 다 주는 티브이와 달리 청각, 즉 단일채널만 주는 라디오가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더 발생시키잖아요. 선만으로 된 그림이 상상의 여지를 더 많이 준다는 거죠. 더구나 선만으로 구성된 형태인데도 입체감도 느낄 수 있어요. 정리하면 선으로만 된 그림은 입체감을 준 그림보다 자유로운 생각, 상상의 영역이 더 확대되고, 생동감도 더 생기며 에너지도 더 발산된다고 생각합니다. 관능적 곡선 속의 뾰족한 형상들 Q-부드러운 곡선의 형상들 속에서 창이나 가시, 뿔 같은 뾰족한 형상도 등장하는데, ‘육감도’에서 꼭 있어야 하나요? A-곡선은 부드러움, 따사로움, 관능 등을 상징합니다. 직선은 날카로움, 공격, 아픔, 상처 등을 상징합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공간에도 직선과 곡선은 공존합니다. 사랑에도 아픔이 있잖아요. 가시가 있잖아요. 불행이 없다면 행복이 있을 수 없죠. 여체는 곡선이고, 남성은 직선입니다. 남자의 발기한 성기도 직선이잖아요. 그 직선이 타원형을 향해 돌진하죠. 직선이 조금씩 있어야 곡선의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날카로움이 있으면 곡선의 부드러움이 더 부드러워 보입니다. 서로 상생하는 것입니다. 현실의 정확한 반영이기도 하죠. Q-이번 전시작업 중에 1987년도에서 2021년에 완성된 작품들이 있네요? A-네, 대학 때 그렸던 그림에 드로잉을 덧얹었죠. 습작 같은 대학 시절의 그림 위에 35년간 쌓인 필력과 세월을 얹어 새로운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거죠. 중층 이미지=세상에 대한 사실화 Q-풍경, 정물, 누드 그림 위에 드로잉을 하여 중층적으로 이미지가 쌓이는 표현법을 사용한 이유는요? A-어떤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면, 그 사건은 여러 사건의 과정들이 쌓인 결과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말끔한 풍경화처럼 완전히 독립된 하나의 상태, 사건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거죠. 그 풍경 안에는 수많은 식물이나 생명체들의 생존을 위한 격렬한 사건들의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죠. 얽히고설킨 여러 사건의 충돌로 하나의 세계가 구성되고 삼라만상이 움직여나가고 있는 거죠. 중층화면의 사용은 이 ‘세상에 대한 사실화’입니다. 중층 된 이미지가 왜 하필 성적 이미지이냐면, 세상의 모든 생물은 번식 욕망의 충만함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욕망의 분출로 개체를 유지하며 생존을 이어 나갈 수 있는 세상 이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다 보니 이 중층이미지로 귀결되는 것이지요. 인간의 영원한 화두, 성 Q- 성을 소재로 한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성을 소재로 하는 작업은 작업 그 자체가 즐거움을 줍니다. 특히 열정이 넘치던 젊은 시절엔 더했죠. 나이 들어 성 욕망이 줄어드니 그 즐거움은 훨씬 줄어들었습니다. 여기에 미술 작업은 삶을 더 높은 경지로 높이는 자기 수련 과정, 인간과 세상을 탐구하며 자신의 가치관을 구축해 나가는 성취감도 있습니다. 누구나 ‘잘 살기’ 위한 탐구, 수련, 명상과도 같은 여정을 거쳐야 ‘잘 사는(득도)’ 단계에 이르는 것이잖아요. 성은 인간 본성을 드러내는 가장 정확한 지표이며, 인간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가장 정확한 답을 주는 소재라 판단하였습니다. 30년 전에 성은 인간이 존재하는 한 인간들의 영원한 화두가 될 것으로 판단한 겁니다. 그 화두를 붙잡고 더 우아하고 참된 삶을 위해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현재진행형. 몸과 정신, 양쪽에 희열을 주는 행위미술 Q-행위 작가로도 활발히 활동하시고 이번 전시회 개막일 날도 행위를 한다면서요? 회화도 하면서 행위작업도 하는 이유가 있겠죠? A-네, 9월 8일 날 7시에 <옷-몸 철학의 관점에서>라는 작품을 합니다. 행위작업을 하는 것은 좀 더 뜨겁게 산다고 할 수 있죠. 하고 싶은 이야기, 분출하고 싶은 이야기가 회화와 설치미술로 만족이 안 되기에 그 에너지가 행위작품으로까지 나온다고 봐야죠. 무당의 피가 내재해 있는지도 모르고요. 행위작업도 그림 작업처럼 그 작업 자체에서 즐거움이 있습니다. 몸을 움직여서 작품을 하고 나면 느끼는 몸이 주는 짜릿한 쾌감은 다른 작품을 할 때 느낄 수 없는 것이죠. 회화나 설치작업은 내 몸 밖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행위미술은 내 몸에서 일어나는 것이니까 엄청난 차이가 있죠. 또한, 개념미술에서 출발한 행위미술이므로 몸뿐만 아니라 정신적 쾌감도 있습니다. 작품을 구상하고 실연 전까지 이뤄지는 개념적 작업과정이 상당한 지적 쾌감을 줍니다. 이중섭, 은박지화의 선 맛 Q-“내가 이중섭미술상을 받아야 한다.”라고 본인이 여기저기 떠들고 다니신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A-2018년 개인전 때 한 관객이 “이중섭, 그림에 버금간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중섭 작품의 매력은 은박지화의 날카로운 인체선 아닌가요? 젊은 시절엔 나도 저런 힘 있는 선들을 그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죠.이제 이중섭 선생이 돌아가신 나이보다 더 살았고, 나름 독창적인 인체 선을 그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관객의 저 말은 나에게 큰 힘이 되었죠. 이 선들과 형태는 세계에서 나만이 그려내는, ‘이혁발다움’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이 선과 형태미가 독창성, 유일성, 회화성에서 나름의 가치를 획득했다고 생각합니다. “이혁발은 이미 한 우주가 되었다” Q- 작품의 완성도가 한국미술사에 한 획이라도 그을 정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신의 작업을 과대평가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A-나뿐 아니라 대부분 미술학도는 젊은 시절에 무엇을 그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의 나이에 이르니 무엇을 그릴까, 어떻게 그릴까의 고민은 없고 그림이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것 같아요. <인생>도 나이 50이 넘으니 자연스레 만들어지더라고요. 회화도 지금의 나이까지 쌓아진 경험과 삶에 대한 태도, 관점, 미적 표현력 등이 자연스레 발아되는 것이죠. 억지로 무엇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화업의 결과가 세월의 힘을 받아서 나름의 경지를 만들어준다고 봅니다. 2019년, 미술평론가 김병수는 “이렇게 나름의 의미를 획득하는 화면은 하나의 세계를 이룩한다. 이혁발은 이미 한 우주가 되었다.”라고 평론의 마지막 문구를 적었어요. 칭찬이 과분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제까지의 그림 작업에 대한 격려의 말이라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오늘도 빨간 볼펜으로 노트에 드로잉을 합니다.노트 11권째, 육감도 드로잉북이 진행 중입니다. 큰 화면으로 옮길 드로잉이 몇 년 치 쌓여가는 것에 스스로 뿌듯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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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욕망’의 예술적 성취‘고상함에 대한 파괴’ 주장하는 사진작가 이성훈 Red shoes #n 28.118#84cm. pigment print. 2021 미술평론가 김병수가 "이성훈의 사진은 거대한 성적 욕망으로 채워져 수시로 그 욕망을 달성하려는 생명체, 인간, 그 본성에 대한 보고서이다"라고 평한 이성훈 사진작가를 만나보겠습니다. - 직장을 다니면서 번 돈을 사진 작업이나 전시회에 모조리 쏟아붓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진 작업이 그만큼 매력적인가요? 아니면 사진 작업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건가요? 그동안 번 돈을 모두 쏟아부은 것은 아닙니다. [웃음]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데이트도 하는데도 지출했지요. 물론 수입보다 전시회나 준비 작업에 들어간 비용이 상당 부분이긴 하나, 저는 사진 매체 자체에만 그리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은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들의 표현 수단일 뿐입니다. 다른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고 충격이 있다면 역량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진 외의 방법으로도 해보고 싶습니다. 사람의 일상 속의 모습보다는 성애 시 모습이 좀 더 가식 없고 솔직한 본질적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본질적일 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작품으로 남기고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즐거움이 상대의 즐거움이며 타인의 즐거움이나 고통이 곧 나와 우리들의 슬픔 또는 환희일 수 있는 것이죠. - 작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은 순수예술창작 의지가 왕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술에 대한 강렬한 열정은 어디서 기인하는가요? 예술은 본질적으로 기존의 ‘고상함과 고정관념에 대한 파괴’라 생각합니다. 추함이 없다면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없는 법이죠. 즉 이 둘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고상한 척 교양인인 척 타인 앞에서는 대부분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다만 그러한 가면을 벗고 살고자 함이고 또한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간섭도,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 저만의 색채로 자유롭게 작업이 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sweet dream.#n 01.42#59cm. pigment print. 2021 - 에로틱한 사진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을 보면 자신의 동성 애인이던 피터와 친구들의 누드와 동성애 상황을 그린 그림과 소묘가 종종 있습니다. 그중에는 미성년 소년들의 모습과 한 남성이 커다란 성기를 드러내고 다른 남성의 성기를 구강 섹스하는 보다 구체적인 동성애 묘사 그림(<에로틱한 에칭>, 1975년)도 있지요. 호크니 자신이 커밍아웃하였으며 피터와의 만남과 이별 후 오랜 시간 힘들었다고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결국 자신과 연인 그리고 친구들의 얘기인 겁니다. 결국,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이자 진솔함입니다. 기상천외한 도쿄의 성문화를 연출 없이 흑백으로 기록한 ‘아라키 노브요시’의 <도쿄 7 hole>이라는 작품집을 보면 일본 특유의 페티쉬 클럽, SM클럽, 쇼걸이 나오는 클럽에서 벌어지는 집단 난교 등 상상 이상의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진집에 나오는 대부분 남성과 업계 종사자(여자)들의 얼굴과 표정이 굉장히 즐거우며 해맑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라키는 이 작품집을 통해서 도쿄 사람들의 모습을 가식과 왜곡 없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 때를 현장 사진으로 기록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즉 소재는 도쿄의 성문화이지만 주제는 인간인 것입니다. 저도 저 자신과 연인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성애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 성애장면도 결국 진솔한 삶의 기록이라는 거고, 소재는 성이지만 주제는 결국 인간이라는 거죠. 본인과 주변 인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작품 속에 작가 본인도 등장하고? 네. 대부분 제 작품 속 등장인물은 저와 연인이며 ‘우리들의 오랜 시간의 사랑의 흔적과 시간의 궤적을 기록한 일기’로써 저 역시 작품 주제, 본질은 인간입니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본질을 읽는 것이 중요하지, 그의 옷차림 머리 스타일, 사는 집이 어디냐, 자동차가 뭐냐 등등은 비본질적인 것이죠. 일상의 모습이든 성행위의 순간이든 인간에 관한 탐구는 같은 것입니다. Red shoes #n 29.118#84cm. pigment print. 2021- - 이러한 예술 열정의 결과물이자, 그간의 인간 본질 탐구의 결정체인 작품들을 공개하는 개인전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9월8일(수)부터 12일(일)까지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경북(02-737-8882)에서 "매혹을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네 번째 개인전을 갖습니다. 그동안의 작품들을 함께 감상하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 “매혹을 넘어서”란 전시 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우리들의 욕망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고 진정 각자의 욕망에만 머무르지 말고 그 위선과 가식의 울타리 뛰어넘어 그 욕망을 매개로 만나는 우리가 찾아가야 할 ‘미지의 공간’ 또는 ‘미지의 지점’ 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sweet dream.#n 04.42#59cm. pigment print. 2021 - <Love>, <Red shoes>, <sweet days>, <sweet dream> 이렇게 4가지 소주제로 나누어진 작품들로 전시계획 중이신데, 이 분류의 의미와 각 소주제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사실 제 작품들은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love>는 육욕적인 사랑, Eros를 말하는 것이고, <sweet days>, <sweet dream>은 달콤한 꿀물이 흐르는 순간의 날들과 꿈을 말합니다. 또한, 무한하지 않은 우리들의 삶과 살아서는 갈 수 없는 죽음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시공간을 뜻합니다. <Red shoes>는 제 두 번째 개인전 전시명으로써 그때는 fetish 성향이 아주 강했지만, 지금은 제가 느끼는 ‘붉은 욕망’에 대한 상징적인 기호라고 보시면 좋을듯합니다. - 성애 사진을 회원들만 보는 인터넷 방에 올렸다고 벌금 백만 원을 맞으셨더군요. 본인은 예술작품인데 왜 문제가 되냐고 항의했지만, 사진작가라고 약식명령에 적시돼 있으면서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더군요. 예술작품이 포르노 취급받는 것에 대해 화나죠? 지금 생각해보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에 스트레스가 매우 심했습니다. 살도 빠지고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조사 때 저는 담당 검사에게 내가 올린 사진들이 음란물인지 아닌지, 그 누가 어떠한 잣대로 판단하고 근거하느냐를 물어 따지니 수사관이 너무나 퉁명스럽게 “해당 판사가 판단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해당 판사가 미술 전공자이거나 예술에 대한 조예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제 작품에 관한 선정성과 흔히 말하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어요.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제도에는 지금도 화가 납니다. 적어도 성인이 성인물을 보는 것이 무슨 죄가 된다는 말입니까? 저와 회원들을 기소하고 유죄 판결 내리신 분들은 야동 안 보고 룸살롱도 안 가고 평생 성직자처럼 살까요?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약식명령 벌금형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저의 공소사실을 인정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 저런 일들을 겪고 나니 포르노로 치부되는 ‘외설과 예술의 구분’에 관한 생각이 많이 드셨을 것 같아요?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외설과 예술의 구분은 감상자 개개인의 몫이죠.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포르노라 할지라도 그 안에 제작자의 사색과 성찰이 담겨 있다면 예술성이 있는 것이죠. 하나 대부분의 포르노는 이러한 부분이 빠져 있어 그냥 ‘야동’일 뿐입니다. 예술이든 포르노든 피해자가 없다면 그 통로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예술적 가치니, 뭐니 이런 복잡한 담론을 떠나서 "예술마저 윤리 도덕 교과서가 되면 세상 재미없어서 어찌 살겠는가?"라고 일갈한 고 마광수 교수의 지론처럼 세상을 더욱 즐겁고 뜨겁게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직무라 생각합니다. sweet days.#n11.34#59cm. pigment print. 2021 - 끝으로 벌어둔 돈을 계속 쏟아붓기만 해야 하는 이 작업을 계속하실 것인지 궁금해지네요. 좋은 예술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굽히지 않고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힘겹게 시간이 좀 더디게 흐르더라도 하지 못할 이유보다 해야만 될 이유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몸이 건강해서 계속해서 섹스를 할 수 있다면 (웃음) 이 작업은 계속될 듯합니다. 수년 전 경제적으로 극심하게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개인전 이후 이번 전시회까지 십 년의 세월이 흘렀죠. 그때 인고의 시간을 견디면서도 창작에 대한 끈은 놓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물들이 이번 전시회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다음에 또 개인전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수필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뭐든 쉽지는 않겠지만 쉽게 얻어지는 일들은 그만큼 가치가 없는 것이겠지요. 이성훈 작가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한마디 하시고 마무리할까 합니다.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시절이 조금이나마 지나고 다시 전시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까지 가족과 지인들 주위의 환경들 그리고 제 삶에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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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재의 획劃의 기록記錄부산 복합문화예술공간MERGE?머지에서 초대전으로 열려 한국을 대표하는 전위예술가로 30여년간 국내외 활동 심홍재의 획劃의 기록記錄 심홍재 작가의 개인전이 부산의 openarts space MERGE?머지에서 2020년 6월 5일부터 6월 25일까지 열린다. 오는 12일에는 작가와의 만남과 퍼포먼스가 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던 중 급성 뇌경색으로 입원을하는 어려움에도 전시를 강해하며 건재함을 과시하였다. 오프닝을 대신해 6월 12일 금요일 7시에는 작가와의 대화와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작가는 이러한 작품의 이면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버려진 자게농과 과거에 이것을 만든 장인의 혼을 연결하는 의미를 엿 볼 수 있다. 작가의 이전 퍼포먼스 작품에서 주술적의미의 작품들을 선보여 왔고 그 작업의 연장선에서 이번 획의 기록을 이해 할 수 있겠다. 작가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이번전시의 내용을 직접 들어보도록 하겠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지금껏 작업을 하면서 보이지 않았던 저와 지금 만들어진 저를 보면서 열심히 잘 버텨 왔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1987년에 작가 데뷔를 해서 지금까지 퍼포먼스, 평면작업, 설치작업을 같이 해오고 있는 심홍재라고 합니다. Q. 이번 전시 주제는 무엇인가요? A. 이번 전시주제는 심홍재의 획입니다. 획을 풀어서 사람들이 서로 상생하고 호흡하는 그런 모습의 작업들로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지금 제 작품에 드러나는 획들은 십이지를 풀어서 서로 같이 뒤엉키는 모습으로 남게 됩니다. 그 모습들이 죽부인의 형태를 닮아가는 모습으로 변형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런 획 작업들이 자개농을 획으로 따내서 화면에 직접적으로 붙이는 작업과 철판을 오려서 가공하는 작업들, 획 작업을 판에 음각으로 파내서 한지로 캐스팅하는 작업으로 변해지고 있습니다. Q. 보통 작업기간은 얼마나 걸리나요? A. 죽부인형태로 골판지의 겉장을 떼어내고 그 사이사이 골마다 색지를 집어넣고 색지를 집어넣은 그 위를 한지로 덮어서 기본 표면을 만들고 그 위에 획 작업한 것을 자개로 따서 붙였기에 작업이 오래 걸리는 편입니다. 시리즈 작품으로 한 작품을 했을 때 20일 정도 걸립니다. 전체적으로 한꺼번에 작업하니깐 조금 시간이 줄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전부 다듬고 해야 하는 과정이기에 굉장히 오래 걸려요. Q. 복합문화예술공간 MERGE?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대안공간의 형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퍼포먼스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그에 맞게 평면작업도 잘 어우러지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심홍재의劃의記錄’을 보러 오신 분들께 한마디 남겨주세요. A. 획 작업 속에서 서로 어우러지고 상생하는 모습. 그리고 서로 소통하고 화합하는 모습들을 같이 꿈꿨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작가로부터 직접 이번 전시의 의미를 들어 보았다. 이번 부산 개인전을 계기로 국내외에서의 작품활동이 더욱 왕성해 지길 바라며, 퍼포먼스와 회화, 설치 등 장르에 구애 받지않고 만들어내는 자유로운 형식의 작품들이 후배 작가들에게 귀감이 되고 더 나아가 한국 미술사에 한 획으로 남길 기대해 본다. 부산자연예술인협회 대표 성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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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공간MERGE?머지 문화예술인 인터뷰 '정제된 기억‘展 허필석 화가MERGE?문화예술인 인터뷰 '정제된 기억‘展 허필석 화가 안녕하세요? 이번 ‘문화예술인 인터뷰'는 복합문화예술공간OpenArts Space MERGE?(이하 예술공간MERGE머지)에서 초대전으로 '정제된 기억‘전을 준비하고 있는 허필석 작가와 인터뷰입니다. 부산을 기반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국제적으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계시는 미술작가인데요. 작가분을 직접 모시고 그간의 작업, 작품에 대한 설명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인터뷰를 통해 작가로부터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Q. 안녕하세요?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저는 미술작가 허필석입니다. Q. 네 너무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셨는데요.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인물 탐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술공간MERGE머지에서 특별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선보이시나요? A. 제가 서울에 전속작가로 있는 갤러리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제게 풍경화 위주의 작품을 요구하셔서 풍경화를 많이 발표했어요. 인물화가 상업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트페어나 상업적인 현장에서는 풍경화 위주로 발표했죠. 그런데 저는 인물화에 대한 욕심이랄까? 동경이 커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인물화를 그려왔어요. 복합문화예술공간OpenArts Space MERGE?의 개인전시때는 지금껏 발표하지 못했던 인물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서울에서만 발표했던 풍경화 작품들과 그동안 제가 꼭꼭 숨겨뒀던 인물화들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Q. 풍경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인물화도 많이 그리시는군요. A. 사실 저는 인물화작가로 첫 출발을 했습니다. 제가 20~30대 시절에는 공모전을 통해 작가 데뷔를 많이 했어요. 저 역시도 지방대학의 한계를 느끼고 공모전을 많이 준비했었죠. 국전에서 큰 상을 많이 받았었는데 그때 상 받은 것의 대부분이 인물화였어요. 특히 근육질이 있는 남자 누드로 대상을 여러 번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너는 인물화 작가다, 너는 풍경화 작가다’라고 나누는 것이 싫어요. 인물화를 그리느냐 풍경화를 그리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풍경화를 그린다는 자체는 상업적인 부분과 맞닿아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예술가로서 부끄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흐나 에곤 쉴레등 수많은 예술가들도 그림을 팔기위해 많이 노력을 했었죠. 저는 그저 붓을 들고 캔버스에 그리는 느낌이 좋아요. 저는 그림에 대한 철학이나 현대미술에 대한 책임감, 현대에 살아가는 작가로서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개척성과 같은 것에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없었어요. 그저 내 눈에 ‘그려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미술에 대한 이론보다는 그림 그리는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군요. A.대학에 진학하고 난 뒤 현대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마치 아마존에 사는 사람들이 양복을 입고 사냥을 하러 가는 듯한 느낌 처럼요. 저한테 현대미술은 전혀 실용성이 없고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저한테는 그 옷이 맞지 않더라고요. 모든 화가들은 현대미술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어요. 미술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현대적인 작품을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느낌도 받았죠. 하지만 제 작품에는 대의담론이나 현대인을 대변하는 내용, 미술사적인 위치나 의미 혹은 현대적 미술의 성향 등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만약 현대미술을 해야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저는 그냥 작가로 살지 않을래요. 저는 그냥 그림 그리는 것이 좋을 뿐이에요. 제가 그리고 싶은 대상을 그리는 것이 좋아요. Q. 어린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셨나요? A.어렸을 적부터 물감을 썩어서 색을 만들어 화면에 칠하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 그 자체를 좋아했어요. 저는 4남매 중 막내였는데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고 형제들과도 터울이 있어서 늘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렸어요. 달력 뒤 에다가 그리거나 편지가 오면 그 봉투를 뜯어서 안쪽 빈 공간에 그리곤 했어요. 한번은 누나 교과서에 그림을 그렸다가 혼난 적도 있었죠. (웃음) 저희 할머니들이 말씀하시길 저는 여백만 보이면 거기에 그림 그리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저놈 나중에 큰일 날세. 저러다가 화가 되겠어.’ 라고 걱정을 하시곤 했어요. Q. 아이가 화가가 될 재능이 있는데 어른들께서 걱정을 하셨나요? A.예전에는 화가가 빌어먹는 직업이라고 불렸어요. 그때는 화가가 결코 좋은 직업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어른들이 저보고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을 하셨는데 나중에는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큰 반대는 하지 않으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놈 크면 화가되겠네. 화가되겠어’ 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 그리는 직업이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후로는 누가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항상 화가라고 말했어요. 중간에 조금 바뀐 적이 있기도 했어요. 만화가로요. (웃음) 그래도 화가라는 직업을 알게 된 5살 때부터 저의 장래희망은 일관적으로 화가였어요.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작가’가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저의 꿈은 ‘화가’가 되는 거였어요. 산에서 혹은 야외 어디에서든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꿈이었는데, 누군가는 그런 저를 보고 세련되지 못한 발상을 한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것이 세련되지 못한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큰 동경의 대상이었고 희망이었어요. 저는 캔버스에 물감으로 붓 칠하는 과정과, 보이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행위자체에 행복을 느껴요.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 화가이기에 저는 화가를 꿈꿔왔던 것 같아요. Q. 그림을 그리시면서 힘든 적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사실 그림을 그리면서 힘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어렸을 때는 집이 잘 사는 편이었어요. 학생시절 때는 남들이 봤을 때 괜찮은 환경에서 살았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저에게 보이지 않는 독립심이 생겨서 집에서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을 했어요. 저는 특정한 종교는 없지만 만약 하느님이 계신다면 저에게 제가 한 만큼 주시는 것 같아요. 경제적인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특별한 실패를 해본 적도 없지만 꾸준히 작품판매가 됐던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림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Q. 풍경화나 인물화를 그릴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A.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편이에요. ‘예술공간MERGE?머지’에서 개인전이 끝나면 10월 31일부터 일본 기행전시 스케줄이 잡혀있어요. 제가 일본을 다니며 봤던 풍경을 그려서 발표하는 전시인데, 이렇게 특별한 기획이 만들어져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풍경화는 제가 상상해서 그려요. 실제로 있을 법한 장소인 것 같은데 사실은 존재하지는 않아요. 현실과 비현실사이를 외줄타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설경위의 의자 그림도 다 연출된 상황이에요. 실제로 설경에 도로가 나있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의자가 놓인 상황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제가 의자를 보는 순간 그리고 싶은 배경을 임의로 상상해내는 거예요. 마치 영화감독이 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처럼 말이죠. 대부분 이런 식으로 풍경화를 그리는데 100퍼센트 저의 상상으로만 그리는 것도 있고 일부만 도용해서 배경을 완전히 바꾸거나 주제를 바꾸는 식으로도 그려요.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은 재미가 없더라고요. Q.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기도 하셨나요? A. 네. 예전에는 그대로 그렸었어요. 예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 인물화와 풍경화는 저의 생각이 많이 개입됐어요. 상상력이 많이 들어갔죠. 세상의 어느 풍경을 보더라도 제 마음에 100퍼센트 만족스러운 풍경은 없어요. 어디를 가더라도 ‘아, 저 나무는 없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죠. 산이 중첩된 배경에 바위가 있는 풍경에서 바위만 필요하다 싶으면 바위만 그림에 가져오고 배경은 바다로 그리는 식이에요. 대체로 현실적인 요소가 들어가더라도 40퍼센트 미만이에요. 내면이 생각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처음부터 내적인 상상력으로만 그리는 경우도 있어요. Q. 인물화를 그리실 때도 상상으로 그리시나요? A. 인물화를 그리는 과정이 재밌어요. 저는 철저하게 흑백사진을 보고 그려요. 색깔에 대한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서요. 컬러사진을 보는 순간 그 색에 매료되어요. 정해놓은 대상의 색을 보는 순간 저의 상상력이나 표현력 등이 제약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십 여년 전부터는 컬러사진을 봐도 흑백으로 바꿔서 인물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될 작품 ‘제임스딘’이나 ‘오드리햅번’처럼요. 실제로 그 사람들은 흑백사진 밖에 없죠. (웃음) 일부러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바꾸기도 하지만 원래 흑백사진밖에 없는 인물일 경우에는 어떤 기술력으로 색을 표현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려요. Q. 작업실 벽에 걸려있는 저 인물화가 눈에 띄네요. 저 그림도 흑백사진을 보고 그리셨나요? A. 저 인물화는 저희 딸입니다. (웃음) 저 작품은 30분 만에 그린 그림입니다. 제가 학생들 그림지도를 하고 있거든요. 학생들에게 유화를 가르쳐주면서 시범으로 그린 그림인데, 자랑 같긴 하지만 30분 만에 그려지더라고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데 손이 조금 빠른 편이지만 30분 만에 그리겠다고 정해 놓으면 잘 안 그려졌을 거예요. 그림 느낌이 좋아서 더 이상 손보지 않고 그대로 둘까 싶습니다. Q. 30분에 그리셨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보통 작업시간은 얼마나 걸리시나요? A. 그림마다 다 달라요. 절대적으로 한 번에 완성되는 그림은 없다고 생각해요. 있다면 100작품 중에서 2작품 정도? 유화는 물감을 말리고 나서 붓 터치가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대개는 그 과정을 2~3회 정도 반복해요.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는 시간으로 따지면 100호를 기준으로 길게는 한 달, 짧게는 일주일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Q. 연간 전시 스케줄이 굉장히 많으신데 전시가 있을 때마다 작품을 준비하시나요? A. 특별한 기획전시인 경우에는 작품준비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소에 작업한 그림을 출품해요. 저는 대학시절 때부터 교양과목은 관심이 없었고 매일 실기실에서 그림만 그렸어요. 성적표를 받아보면 실기과목은 전부 A+이고 나머지는 D였죠. (웃음) 친구들이 과제 검사 때문에 전날에 밤새며 그림을 그릴 때 저는 제가 그려놓은 그림 중 하나를 선택해서 제출만 하면 됐어요. 제 그림을 그린다고 밤을 샌 적은 많았지만 특별히 과제 때문에 밤을 샌 적은 없었어요. 지금도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늘 그림을 그리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언제 전시스케줄이 잡힌다고 해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작업은 매일 하시나요? A. 매일 작업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저 같은 경우에는 매일 하기가 어려워요.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 있거든요. 가급적이면 낮에 5시간 이상씩 작업시간을 두려도 하는데 그게 잘 안 지켜지더라고요. 저는 놀 때는 놀고 집중할 때는 굉장히 많은 양의 작업을 해요. 지금도 5일째 작업실에서 새벽까지 그림에만 집중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Q. 예전부터 그렇게 작업해오셨나요? A. 예전에는 규칙적으로 작업했었는데 요새 들어 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나이를 먹다보니 아무래도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생겨요. 저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성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의 사회적 위치는 높아지지 않았는데 사회적 넓이가 넓어지다 보니 온전히 저에게만 시간을 쏟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며칠 전부터 전화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웃음) 나 자신을 위해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현재 5일째 핸드폰 없는 상태로 작업실에서 작업에만 몰두 하고있는 거죠. Q. 작가님께서 직접 전화기를 없애신 것이었군요. (웃음) 작가님은 자신 스스로를 많이 신경 쓰시는 것 같아요. A. 그동안 저 자신에 대해 신경을 많이 못썼어요. 사람이 응축된 채로 참고 참다보면 한 순간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잖아요. 이번 전화기사건이 그런 것 같아요. 맞아요. 방금 큐레이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자기 애착이 많은데도 살아가다보면 나를 신경 쓰는 게 참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음. 제가 말씀드려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제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요. 30대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면서 공황장애가 시작된 것 같아요. 길게 앓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에요. 많이 호전됐지만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불안증세에는 임소공포, 광장공포등 다양한 것이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멀리 여행가거나 비행기를 길게 타는 것이 제일 힘들었어요. 멀리 가는 것이 두렵더라고요. Q. 일본전시 스케줄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일본까지 가는 것은 괜찮으신가요? A. 일본은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가니까 괜찮은데 긴 비행은 힘들어요. 그래서 먼 곳에 가보지 못하는 욕구불만의 표출로 풍경화가 시작된 것 같아요. 물론 20대 시절에도 풍경화를 그렸어요. 그때는 풍경화 작업이 20퍼센트, 인물화가 80퍼센트였는데 공황장애를 앓기 시작한 뒤부터 풍경화 작업이 80퍼센트, 인물화가 20퍼센트로 바뀌었어요. Q.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A. 무엇이든지 처음 경험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에요. 공황장애를 앓기 시작 하고나서 어느 순간부터 광안대교를 건너지 못하겠더라고요. 높은 곳에서 공포를 느끼는 증상이 생겼거든요. 만약 도로 위에서 사고가 나면 차에서 내리면 되는데 광안대교에서 사고가 나면 내가 바다로 뛰어내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생기더라고요. 자기인지 행동치료법이라고 해서 두려운 곳일수록 직접 부딪쳐보는 치료법이 있어요. 그래서 한번은 용기를 내서 광안대교 앞에 차를 가져갔어요. 신호를 받고 광안대교를 건너려는데 처음에는 실패했어요. 유턴을 해서 다시 돌아갔는데 두 번째도 실패했죠. 세 번째로 갔을 때는 ‘에이 죽지 뭐!’ 하고 다리를 건넜어요. 실제로 광안대교를 차로 지나가는 것이 죽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죽자고 생각하고 다리를 건넜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오히려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오호 이것 봐라?’하고 한 번 더 건너는데 성공했고 그때 기분이 정말로 좋았어요. 그렇게 열다섯 번을 왔다갔다하면서 광안대교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공황장애라는 것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완치되는 경우가 한 번씩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 무릎을 한번 다친 뒤 꾸준히 치료받고 완치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무릎이 아플 일은 꼭 한번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 전에 다친 이유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공황장애도 완벽하게 나았다고 하더라도 살면서 또 다른 이유로 한 번 더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완벽하게 낫는 병은 없는 것 같아요. Q. 공황장애가 작가님의 풍경화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A. 공황장애로 인해 정신적으로 치유가 필요할 당시에 풍경화를 그리면서 마음의 치유를 많이 받았어요. 당시 아트페어 화랑에서 저에게 요구했던 작품도 풍경화였고요. 저의 풍경화 제목이 오버 데어(over there)예요. 저 너머라는 뜻이죠. 먼 곳을 가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에서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선생님들은 제 작품에서 *노스탤지어가 느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정서적인 부분이 그림에 반영되서 그런 것 같아요. (노스탤지어: 특정 시기 또는 공간적으로 떨어진 장소를 상상하고 특정 시간과 공간을 대상으로 그리움이나 동경심을 갖는 것 _편집자) 저에게 공황장애는 사실 참 고마운 존재예요. 공황장애 때문에 생긴 예민함으로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말을 꼭 하고 싶어요. Q. 지금은 좀 어떠신가요? A. 85퍼센트까지 극복하고 아직 15퍼센트는 증상이 남아있어요. 전반적으로 괜찮아졌지만 간혹 일 년에 한 두 번씩 불안감이 생겨요. 공황장애 약을 끊은 지도 몇 년 되었는데 어디 갈 때 전화기는 놔두고 가더라도 약은 부적처럼 들고 다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어쩌다가 한 번씩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먹는 정도예요. Q.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A. 20대 때는 그림물감을 사기위해서 학원 강사 일을 했어요.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학교, 문화센터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예술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10년 정도 가르쳤고 대학강의는 15년째 하고 있어요. 잠시 부산여대에 초빙교수로 있을 때 안정적인 환경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특정한 곳에 소속 되서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반복적인 삶을 싫어해요. 저는 딱 가르치는 것만, 그림 수업만 하면 좋겠어요. (웃음) Q.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 잘 맞으신가요? A. 잘 맞아요. 처음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가르치는 일이 직업 비슷하게 되어버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보람을 많이 느껴요. Q. 주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A. 제가 지도하는 방향대로 아이들의 그림이 성장될 때 보람을 느껴요. 그림이 성장한다는 것은 단지 기술이 성장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리는 거예요. 조금 더 고차원적으로 접근하면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죠. Q. OpenArts Space MERGE?머지에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제 그림은 어려운 그림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처음에 말씀 드린 것처럼 저의 그림은 대의담론이라든지 현대미술의 가치, 미술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서명을 할 때 년도를 쓰지 않아요. 저는 제 그림을 보면 언제쯤 그렸는지 알 수 있거든요. 저는 철저하게 ‘현실’을 그리는 작가라고 보시면 돼요. 저의 그림에는 제가 현재를 살아가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그림을 보시면서 ‘허필석이라는 사람이 지금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감성을 보고 있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 왜 이렇게 일본에 관련된 그림이 많지? 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허필석 작가가 현재 일본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거죠. 전시를 보면서 관객에게 무엇을 요구한다는 자체가 관객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이야기를, 저의 일기장을 훔쳐본다고 생각하시고 그림을 보시면 좋겠어요. 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곧 그간 발표되지 않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초대전이 시작됩니다. 개인적으로 뜻 깊은 전시가 되길 바라면서 이상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초대전은 부산에 위치한 복합문화예술공간OpenArts Space MERGE?머지에서 2018년 7월 14일부터 26일까지입니다. 많은 관람부탁드리며, 미술작가에게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대중들의 관심이 큰 몫을 한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허필석작가 기억해 주시고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 정현영 OpenArts Space MERGE?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