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욕망’의 예술적 성취

기사입력 2021.08.17 10:05 조회수 1,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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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함에 대한 파괴’ 주장하는 사진작가 이성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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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shoes #n 28.118#84cm. pigment print. 2021


 미술평론가 김병수가 "이성훈의 사진은 거대한 성적 욕망으로 채워져 수시로 그 욕망을 달성하려는 생명체, 인간, 그 본성에 대한 보고서이다"라고 평한 이성훈 사진작가를 만나보겠습니다.

 

- 직장을 다니면서 번 돈을 사진 작업이나 전시회에 모조리 쏟아붓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진 작업이 그만큼 매력적인가요? 아니면 사진 작업을 통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건가요? 


 그동안 번 돈을 모두 쏟아부은 것은 아닙니다. [웃음] 밥도 먹고 술도 먹고 데이트도 하는데도 지출했지요. 물론 수입보다 전시회나 준비 작업에 들어간 비용이 상당 부분이긴 하나, 저는 사진 매체 자체에만 그리 집착하지 않습니다.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은 제가 하고자 하는 얘기들의 표현 수단일 뿐입니다. 다른 형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이고 충격이 있다면 역량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사진 외의 방법으로도 해보고 싶습니다.

 사람의 일상 속의 모습보다는 성애 시 모습이 좀 더 가식 없고 솔직한 본질적 모습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장 본질적일 때의 모습을 기록하고 작품으로 남기고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나의 즐거움이 상대의 즐거움이며 타인의 즐거움이나 고통이 곧 나와 우리들의 슬픔 또는 환희일 수 있는 것이죠.



- 작업에 대한 강렬한 열정은 순수예술창작 의지가 왕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예술에 대한 강렬한 열정은 어디서 기인하는가요? 


 예술은 본질적으로 기존의 ‘고상함과 고정관념에 대한 파괴’라 생각합니다. 추함이 없다면 아름다움이 존재할 수 없는 법이죠. 즉 이 둘은 둘이 아닌 하나입니다. 사람들의 고상한 척 교양인인 척 타인 앞에서는 대부분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고 봅니다. 저는 다만 그러한 가면을 벗고 살고자 함이고 또한 전업 작가가 아니라서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간섭도,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어서 저만의 색채로 자유롭게 작업이 가능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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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dream.#n 01.42#59cm. pigment print. 2021


- 에로틱한 사진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의 작품들을 보면 자신의 동성 애인이던 피터와 친구들의 누드와 동성애 상황을 그린 그림과 소묘가 종종 있습니다. 그중에는 미성년 소년들의 모습과 한 남성이 커다란 성기를 드러내고 다른 남성의 성기를 구강 섹스하는 보다 구체적인 동성애 묘사 그림(<에로틱한 에칭>, 1975년)도 있지요. 호크니 자신이 커밍아웃하였으며 피터와의 만남과 이별 후 오랜 시간 힘들었다고 스스로 고백했습니다. 이러한 그의 작품들은 결국 자신과 연인 그리고 친구들의 얘기인 겁니다. 결국, 작가 자신의 삶에 대한 고백이자 진솔함입니다.

 기상천외한 도쿄의 성문화를 연출 없이 흑백으로 기록한 ‘아라키 노브요시’의 <도쿄 7 hole>이라는 작품집을 보면 일본 특유의 페티쉬 클럽, SM클럽, 쇼걸이 나오는 클럽에서 벌어지는 집단 난교 등 상상 이상의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진집에 나오는 대부분 남성과 업계 종사자(여자)들의 얼굴과 표정이 굉장히 즐거우며 해맑다는 것입니다. 결국, 아라키는 이 작품집을 통해서 도쿄 사람들의 모습을 가식과 왜곡 없이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 때를 현장 사진으로 기록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즉 소재는 도쿄의 성문화이지만 주제는 인간인 것입니다.

 저도 저 자신과 연인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성애라는 방식으로 표현할 뿐입니다.


- 성애장면도 결국 진솔한 삶의 기록이라는 거고, 소재는 성이지만 주제는 결국 인간이라는 거죠. 본인과 주변 인간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작품 속에 작가 본인도 등장하고?


 네. 대부분 제 작품 속 등장인물은 저와 연인이며 ‘우리들의 오랜 시간의 사랑의 흔적과 시간의 궤적을 기록한 일기’로써 저 역시 작품 주제, 본질은 인간입니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의 본질을 읽는 것이 중요하지, 그의 옷차림 머리 스타일, 사는 집이 어디냐, 자동차가 뭐냐 등등은 비본질적인 것이죠. 일상의 모습이든 성행위의 순간이든 인간에 관한 탐구는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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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shoes #n 29.118#84cm. pigment print. 2021-


- 이러한 예술 열정의 결과물이자, 그간의 인간 본질 탐구의 결정체인 작품들을 공개하는 개인전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9월8일(수)부터 12일(일)까지 인사동에 있는 갤러리 경북(02-737-8882)에서 "매혹을 넘어서"라는 제목으로 네 번째 개인전을 갖습니다. 그동안의 작품들을 함께 감상하실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 “매혹을 넘어서”란 전시 명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우리들의 욕망을 숨기지 말고 드러내고 진정 각자의 욕망에만 머무르지 말고 그 위선과 가식의 울타리 뛰어넘어 그 욕망을 매개로 만나는 우리가 찾아가야 할 ‘미지의 공간’ 또는 ‘미지의 지점’ 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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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dream.#n 04.42#59cm. pigment print. 2021


- <Love>,  <Red shoes>, <sweet days>, <sweet dream> 이렇게 4가지 소주제로 나누어진 작품들로 전시계획 중이신데, 이 분류의 의미와 각 소주제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사실 제 작품들은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습니다. 

 <love>는 육욕적인 사랑, Eros를 말하는 것이고, <sweet days>, <sweet dream>은 달콤한 꿀물이 흐르는 순간의 날들과 꿈을 말합니다. 또한, 무한하지 않은 우리들의 삶과 살아서는 갈 수 없는 죽음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하는 시공간을 뜻합니다. <Red shoes>는 제 두 번째 개인전 전시명으로써 그때는 fetish 성향이 아주 강했지만, 지금은 제가 느끼는 ‘붉은 욕망’에 대한 상징적인 기호라고 보시면 좋을듯합니다.


- 성애 사진을 회원들만 보는 인터넷 방에 올렸다고 벌금 백만 원을 맞으셨더군요. 본인은 예술작품인데 왜 문제가 되냐고 항의했지만, 사진작가라고 약식명령에 적시돼 있으면서도 전혀 고려되지 않았더군요. 예술작품이 포르노 취급받는 것에 대해 화나죠? 


 지금 생각해보면 살면서 처음 겪는 일에 스트레스가 매우 심했습니다. 살도 빠지고 두려운 마음도 있었습니다. 조사 때 저는 담당 검사에게 내가 올린 사진들이 음란물인지 아닌지, 그 누가 어떠한 잣대로 판단하고 근거하느냐를 물어 따지니 수사관이 너무나 퉁명스럽게 “해당 판사가 판단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그 해당 판사가 미술 전공자이거나 예술에 대한 조예가 얼마나 있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제 작품에 관한 선정성과 흔히 말하는 예술과 외설의 경계에 대해서는 별 관심 없어요.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옥죄는 제도에는 지금도 화가 납니다. 적어도 성인이 성인물을 보는 것이 무슨 죄가 된다는 말입니까? 저와 회원들을 기소하고 유죄 판결 내리신 분들은 야동 안 보고 룸살롱도 안 가고 평생 성직자처럼 살까요? 당시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약식명령 벌금형을 내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지만, 저의 공소사실을 인정한 것은 절대 아니었습니다.



-  저런 일들을 겪고 나니 포르노로 치부되는 ‘외설과 예술의 구분’에 관한 생각이 많이 드셨을 것 같아요?

 

 원론적인 답변이지만, 외설과 예술의 구분은 감상자 개개인의 몫이죠. 한 가지만 덧붙인다면 포르노라 할지라도 그 안에 제작자의 사색과 성찰이 담겨 있다면 예술성이 있는 것이죠. 하나 대부분의 포르노는 이러한 부분이 빠져 있어 그냥 ‘야동’일 뿐입니다. 예술이든 포르노든 피해자가 없다면 그 통로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


 예술적 가치니, 뭐니 이런 복잡한 담론을 떠나서 "예술마저 윤리 도덕 교과서가 되면 세상 재미없어서 어찌 살겠는가?"라고 일갈한 고 마광수 교수의 지론처럼 세상을 더욱 즐겁고 뜨겁게 만드는 것이 예술가의 직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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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eet days.#n11.34#59cm. pigment print. 2021


- 끝으로 벌어둔 돈을 계속 쏟아붓기만 해야 하는 이 작업을 계속하실 것인지 궁금해지네요.


 좋은 예술가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를 굽히지 않고 작품으로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힘겹게 시간이 좀 더디게 흐르더라도 하지 못할 이유보다 해야만 될 이유를 먼저 찾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몸이 건강해서 계속해서 섹스를 할 수 있다면 (웃음) 이 작업은 계속될 듯합니다.

 수년 전 경제적으로 극심하게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 번째 개인전 이후 이번 전시회까지 십 년의 세월이 흘렀죠. 그때 인고의 시간을 견디면서도 창작에 대한 끈은 놓지 않고 꾸준하게 작업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물들이 이번 전시회도 가능하게 한 것입니다.

 다음에 또 개인전을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생각하던 수필집 출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뭐든 쉽지는 않겠지만 쉽게 얻어지는 일들은 그만큼 가치가 없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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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훈 작가


-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 한마디 하시고 마무리할까 합니다. 


 무엇보다도 어려웠던 시절이 조금이나마 지나고 다시 전시회를 할 수 있는 여건이 되기까지 가족과 지인들 주위의 환경들 그리고 제 삶에 고맙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좋은 자리를 만들어주신 기자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혁발 기자 기자 art339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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