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공간MERGE?머지 문화예술인 인터뷰 '정제된 기억‘展 허필석 화가

그리는 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국제적으로 왕성한 창작활동 부산에
기사입력 2018.07.08 10:58 조회수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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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RGE?문화예술인 인터뷰
 
'정제된 기억‘展 허필석 화가 

안녕하세요? 이번 ‘문화예술인 인터뷰'는
복합문화예술공간OpenArts Space MERGE?(이하 예술공간MERGE머지)에서 초대전으로
'정제된 기억‘전을 준비하고 있는 허필석 작가와 인터뷰입니다.
부산을 기반으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국제적으로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계시는 미술작가인데요.
작가분을 직접 모시고 그간의 작업, 작품에 대한 설명과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들을 인터뷰를 통해 작가로부터 직접 들어보는 시간을 가져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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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우선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반갑습니다. 저는 미술작가 허필석입니다. 

Q. 네 너무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하셨는데요. 인터뷰를 통해 자세한 인물 탐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술공간MERGE머지에서 특별한 개인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선보이시나요? 

A. 제가 서울에 전속작가로 있는 갤러리가 있는데 그곳에서는 제게 풍경화 위주의 작품을 요구하셔서 풍경화를 많이 발표했어요. 인물화가 상업성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트페어나 상업적인 현장에서는 풍경화 위주로 발표했죠. 그런데 저는 인물화에 대한 욕심이랄까? 동경이 커요. 그래서 지속적으로 인물화를 그려왔어요. 복합문화예술공간OpenArts Space MERGE?의 개인전시때는 지금껏 발표하지 못했던 인물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서울에서만 발표했던 풍경화 작품들과 그동안 제가 꼭꼭 숨겨뒀던 인물화들을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Q. 풍경화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인물화도 많이 그리시는군요. 

A. 사실 저는 인물화작가로 첫 출발을 했습니다. 
제가 20~30대 시절에는 공모전을 통해 작가 데뷔를 많이 했어요. 저 역시도 지방대학의 한계를 느끼고 공모전을 많이 준비했었죠. 국전에서 큰 상을 많이 받았었는데 그때 상 받은 것의 대부분이 인물화였어요. 특히 근육질이 있는 남자 누드로 대상을 여러 번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너는 인물화 작가다, 너는 풍경화 작가다’라고 나누는 것이 싫어요. 인물화를 그리느냐 풍경화를 그리느냐는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풍경화를 그린다는 자체는 상업적인 부분과 맞닿아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예술가로서 부끄러운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흐나 에곤 쉴레등 수많은 예술가들도 그림을 팔기위해 많이 노력을 했었죠. 
저는 그저 붓을 들고 캔버스에 그리는 느낌이 좋아요. 저는 그림에 대한 철학이나 현대미술에 대한 책임감, 현대에 살아가는 작가로서 새로운 작품에 대한 개척성과 같은 것에는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없었어요. 그저 내 눈에 ‘그려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Q. 미술에 대한 이론보다는 그림 그리는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는군요. 

A.대학에 진학하고 난 뒤 현대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마치 아마존에 사는 사람들이 양복을 입고 사냥을 하러 가는 듯한  느낌 처럼요. 저한테 현대미술은 전혀 실용성이 없고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어요.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저한테는 그 옷이 맞지 않더라고요. 
모든 화가들은 현대미술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어요. 미술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현대적인 작품을 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느낌도 받았죠. 
하지만 제 작품에는 대의담론이나 현대인을 대변하는 내용, 미술사적인 위치나 의미 혹은 현대적 미술의 성향 등과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어요. 만약 현대미술을 해야만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면 저는 그냥 작가로 살지 않을래요. 저는 그냥 그림 그리는 것이 좋을 뿐이에요. 제가 그리고 싶은 대상을 그리는 것이 좋아요. 


Q. 어린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셨나요? 

A.어렸을 적부터 물감을 썩어서 색을 만들어 화면에 칠하고 그림을 그리는 과정 그 자체를 좋아했어요. 저는 4남매 중 막내였는데 부모님은 항상 바쁘셨고 형제들과도 터울이 있어서 늘 집에서 혼자 그림을 그렸어요. 달력 뒤 에다가 그리거나 편지가 오면 그 봉투를 뜯어서 안쪽 빈 공간에 그리곤 했어요. 한번은 누나 교과서에 그림을 그렸다가 혼난 적도 있었죠. (웃음) 저희 할머니들이 말씀하시길 저는 여백만 보이면 거기에 그림 그리는 것을 그렇게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른들이 ‘저놈 나중에 큰일 날세. 저러다가 화가 되겠어.’ 라고 걱정을 하시곤 했어요. 


Q. 아이가 화가가 될 재능이 있는데 어른들께서 걱정을 하셨나요? 

A.예전에는 화가가 빌어먹는 직업이라고 불렸어요. 그때는 화가가 결코 좋은 직업이 아니었거든요. 그래서 처음에는 어른들이 저보고 그림 잘 그린다는 말을 하셨는데 나중에는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도 큰 반대는 하지 않으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저놈 크면 화가되겠네. 화가되겠어’ 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그림 그리는 직업이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됐고, 이후로는 누가 장래희망을 물어보면 항상 화가라고 말했어요. 중간에 조금 바뀐 적이 있기도 했어요. 만화가로요. (웃음) 그래도 화가라는 직업을 알게 된 5살 때부터 저의 장래희망은 일관적으로 화가였어요. 

포괄적인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작가’가 될 수 있지만 궁극적인 저의 꿈은 ‘화가’가 되는 거였어요. 산에서 혹은 야외 어디에서든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꿈이었는데, 누군가는 그런 저를 보고 세련되지 못한 발상을 한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것이 세련되지 못한 발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큰 동경의 대상이었고 희망이었어요. 
저는 캔버스에 물감으로 붓 칠하는 과정과, 보이는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행위자체에 행복을 느껴요. 그런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 화가이기에 저는 화가를 꿈꿔왔던 것 같아요. 

Q. 그림을 그리시면서 힘든 적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저는 사실 그림을 그리면서 힘든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어렸을 때는 집이 잘 사는 편이었어요. 학생시절 때는 남들이 봤을 때 괜찮은 환경에서 살았죠.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저에게 보이지 않는 독립심이 생겨서 집에서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해결을 했어요.
저는 특정한 종교는 없지만 만약 하느님이 계신다면 저에게 제가 한 만큼 주시는 것 같아요. 경제적인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특별한 실패를 해본 적도 없지만 꾸준히 작품판매가 됐던 것도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림 때문에 힘들었던 적은 없었어요. 

Q. 풍경화나 인물화를 그릴 때 주로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A.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다른 편이에요. 
‘예술공간MERGE?머지’에서 개인전이 끝나면 10월 31일부터 일본 기행전시 스케줄이 잡혀있어요. 제가 일본을 다니며 봤던 풍경을 그려서 발표하는 전시인데, 이렇게 특별한 기획이 만들어져서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면 대부분 풍경화는 제가 상상해서 그려요.  

실제로 있을 법한 장소인 것 같은데 사실은 존재하지는 않아요. 현실과 비현실사이를 외줄타기하고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설경위의 의자 그림도 다 연출된 상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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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설경에 도로가 나있고 멀리 바다가 보이는 곳에 의자가 놓인 상황을 그린 것이 아니라, 제가 의자를 보는 순간 그리고 싶은 배경을 임의로 상상해내는 거예요. 마치 영화감독이 한 장면을 연출하는 것처럼 말이죠. 
대부분 이런 식으로 풍경화를 그리는데 100퍼센트 저의 상상으로만 그리는 것도 있고 일부만 도용해서 배경을 완전히 바꾸거나 주제를 바꾸는 식으로도 그려요. 있는 그대로를 그리는 것은 재미가 없더라고요. 


Q. 예전에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기도 하셨나요? 

A. 네. 예전에는 그대로 그렸었어요. 예전과 비교했을 때 지금 인물화와 풍경화는 저의 생각이 많이 개입됐어요. 상상력이 많이 들어갔죠. 
세상의 어느 풍경을 보더라도 제 마음에 100퍼센트 만족스러운 풍경은 없어요. 어디를 가더라도 ‘아, 저 나무는 없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이 들죠. 
산이 중첩된 배경에 바위가 있는 풍경에서 바위만 필요하다 싶으면 바위만 그림에 가져오고 배경은 바다로 그리는 식이에요. 대체로 현실적인 요소가 들어가더라도 40퍼센트 미만이에요. 내면이 생각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서 처음부터 내적인 상상력으로만 그리는 경우도 있어요. 
 

Q. 인물화를 그리실 때도 상상으로 그리시나요? 

A. 인물화를 그리는 과정이 재밌어요. 저는 철저하게 흑백사진을 보고 그려요. 색깔에 대한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어서요. 컬러사진을 보는 순간 그 색에 매료되어요. 정해놓은 대상의 색을 보는 순간 저의 상상력이나 표현력 등이 제약을 받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십 여년 전부터는 컬러사진을 봐도 흑백으로 바꿔서 인물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번에 전시될 작품 ‘제임스딘’이나 ‘오드리햅번’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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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 사람들은 흑백사진 밖에 없죠. (웃음) 일부러 컬러사진을 흑백으로 바꾸기도 하지만 원래 흑백사진밖에 없는 인물일 경우에는 어떤 기술력으로 색을 표현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며 그려요.  

Q. 작업실 벽에 걸려있는 저 인물화가 눈에 띄네요. 저 그림도 흑백사진을 보고 그리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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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저 인물화는 저희 딸입니다. (웃음) 저 작품은 30분 만에 그린 그림입니다. 
제가 학생들 그림지도를 하고 있거든요. 학생들에게 유화를 가르쳐주면서 시범으로 그린 그림인데, 자랑 같긴 하지만 30분 만에 그려지더라고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데 손이 조금 빠른 편이지만 30분 만에 그리겠다고 정해 놓으면 잘 안 그려졌을 거예요. 그림 느낌이 좋아서 더 이상 손보지 않고 그대로 둘까 싶습니다. 


Q. 30분에 그리셨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보통 작업시간은 얼마나 걸리시나요? 

A. 그림마다 다 달라요. 절대적으로 한 번에 완성되는 그림은 없다고 생각해요.  있다면 100작품 중에서 2작품 정도? 유화는 물감을 말리고 나서 붓 터치가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대개는 그 과정을 2~3회 정도 반복해요.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는 시간으로 따지면 100호를 기준으로 길게는 한 달, 짧게는 일주일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Q. 연간 전시 스케줄이 굉장히 많으신데 전시가 있을 때마다 작품을 준비하시나요?

A. 특별한 기획전시인 경우에는 작품준비를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평소에 작업한 그림을 출품해요. 
저는 대학시절 때부터 교양과목은 관심이 없었고 매일 실기실에서 그림만 그렸어요. 성적표를 받아보면 실기과목은 전부 A+이고 나머지는 D였죠. (웃음) 친구들이 과제 검사 때문에 전날에 밤새며 그림을 그릴 때 저는 제가 그려놓은 그림 중 하나를 선택해서 제출만 하면 됐어요. 제 그림을 그린다고 밤을 샌 적은 많았지만 특별히 과제 때문에 밤을 샌 적은 없었어요.
지금도 그런 것 같아요. 저는 늘 그림을 그리는 과정 중에 있기 때문에 언제 전시스케줄이 잡힌다고 해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Q. 작업은 매일 하시나요?

A. 매일 작업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저 같은 경우에는 매일 하기가 어려워요.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 있거든요. 가급적이면 낮에 5시간 이상씩 작업시간을 두려도 하는데 그게 잘 안 지켜지더라고요. 
저는 놀 때는 놀고 집중할 때는 굉장히 많은 양의 작업을 해요. 지금도 5일째 작업실에서 새벽까지 그림에만 집중하며 작업하고 있어요.
 
Q. 예전부터 그렇게 작업해오셨나요?  

A. 예전에는 규칙적으로 작업했었는데 요새 들어 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나이를 먹다보니 아무래도 주변에서 많은 일들이 생겨요. 저는 작가로 살아가고 있지만 사회성도 중요하게 생각해요. 저의 사회적 위치는 높아지지 않았는데 사회적 넓이가 넓어지다 보니 온전히 저에게만 시간을 쏟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사실 며칠 전부터 전화기를 사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웃음) 나 자신을 위해 집중하는 시간이 너무 없는 것 같아서. 현재 5일째 핸드폰 없는 상태로 작업실에서 작업에만 몰두 하고있는 거죠. 

 
Q. 작가님께서 직접 전화기를 없애신 것이었군요. (웃음) 작가님은 자신 스스로를 많이 신경 쓰시는 것 같아요. 

A. 그동안 저 자신에 대해 신경을 많이 못썼어요. 사람이 응축된 채로 참고 참다보면 한 순간 사건이 터지기 마련이잖아요. 이번 전화기사건이 그런 것 같아요. 맞아요. 방금 큐레이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저는 자기 애착이 많은데도 살아가다보면 나를 신경 쓰는 게 참 쉽지가 않은 것 같아요. 

음. 제가 말씀드려야 할 것이 하나 있는데, 제가 공황장애를 앓고 있어요. 30대를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위험에 대한 불안감이 생기면서 공황장애가 시작된 것 같아요. 길게 앓았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에요. 많이 호전됐지만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불안증세에는 임소공포, 광장공포등 다양한 것이 있는데 저는 그중에서도 멀리 여행가거나 비행기를 길게 타는 것이 제일 힘들었어요. 멀리 가는 것이 두렵더라고요.


Q. 일본전시 스케줄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일본까지 가는 것은 괜찮으신가요? 

A. 일본은 비행기로 2시간이면 가니까 괜찮은데 긴 비행은 힘들어요. 그래서 먼 곳에 가보지 못하는 욕구불만의 표출로 풍경화가 시작된 것 같아요. 
물론 20대 시절에도 풍경화를 그렸어요. 그때는 풍경화 작업이 20퍼센트, 인물화가 80퍼센트였는데 공황장애를 앓기 시작한 뒤부터 풍경화 작업이 80퍼센트, 인물화가 20퍼센트로 바뀌었어요. 


Q. 공황장애를 앓으면서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A. 무엇이든지 처음 경험한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에요. 공황장애를 앓기 시작 하고나서 어느 순간부터 광안대교를 건너지 못하겠더라고요. 높은 곳에서 공포를 느끼는 증상이 생겼거든요. 만약 도로 위에서 사고가 나면 차에서 내리면 되는데 광안대교에서 사고가 나면 내가 바다로 뛰어내리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생기더라고요. 

자기인지 행동치료법이라고 해서 두려운 곳일수록 직접 부딪쳐보는 치료법이 있어요. 그래서 한번은 용기를 내서 광안대교 앞에 차를 가져갔어요. 신호를 받고 광안대교를 건너려는데 처음에는 실패했어요. 유턴을 해서 다시 돌아갔는데 두 번째도 실패했죠. 세 번째로 갔을 때는 ‘에이 죽지 뭐!’ 하고 다리를 건넜어요. 실제로 광안대교를 차로 지나가는 것이 죽는 일은 아니잖아요. 그래도 죽자고 생각하고 다리를 건넜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예요. 오히려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오호 이것 봐라?’하고 한 번 더 건너는데 성공했고 그때 기분이 정말로 좋았어요. 
그렇게 열다섯 번을 왔다갔다하면서 광안대교에 대한 불안감이 완전히 없어졌어요. 공황장애라는 것은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완치되는 경우가 한 번씩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이 무릎을 한번 다친 뒤 꾸준히 치료받고 완치판정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무릎이 아플 일은 꼭 한번 생기기 마련이에요. 그 전에 다친 이유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공황장애도 완벽하게 나았다고 하더라도 살면서 또 다른 이유로 한 번 더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세상에 완벽하게 낫는 병은 없는 것 같아요. 

Q. 공황장애가 작가님의 풍경화 작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 같아요. 

A. 공황장애로 인해 정신적으로 치유가 필요할 당시에 풍경화를 그리면서 마음의 치유를 많이 받았어요. 당시 아트페어 화랑에서 저에게 요구했던 작품도 풍경화였고요.

저의 풍경화 제목이 오버 데어(over there)예요. 저 너머라는 뜻이죠. 먼 곳을 가지 못하는 애틋한 마음에서 작품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어떤 선생님들은 제 작품에서 *노스탤지어가 느껴진다고 하시더라고요. 정서적인 부분이 그림에 반영되서 그런 것 같아요. 
(노스탤지어: 특정 시기 또는 공간적으로 떨어진 장소를 상상하고 특정 시간과 공간을 대상으로 그리움이나 동경심을 갖는 것 _편집자) 
저에게 공황장애는 사실 참 고마운 존재예요. 공황장애 때문에 생긴 예민함으로 그림에 집중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말을 꼭 하고 싶어요.

Q. 지금은 좀 어떠신가요? 

A. 85퍼센트까지 극복하고 아직 15퍼센트는 증상이 남아있어요. 전반적으로 괜찮아졌지만 간혹 일 년에 한 두 번씩 불안감이 생겨요. 
공황장애 약을 끊은 지도 몇 년 되었는데 어디 갈 때 전화기는 놔두고 가더라도 약은 부적처럼 들고 다니는 것 같아요. 지금은 어쩌다가 한 번씩 상태가 좋지 않을 때 먹는 정도예요.

Q.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 계신다고 하셨는데,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A. 20대 때는 그림물감을 사기위해서 학원 강사 일을 했어요. 그것을 시작으로 해서 학교, 문화센터에서 가르치는 일을 했어요. 예술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을 10년 정도 가르쳤고 대학강의는 15년째 하고 있어요. 잠시 부산여대에 초빙교수로 있을 때 안정적인 환경에서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특정한 곳에 소속 되서 똑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퇴근하는 반복적인 삶을 싫어해요. 
저는 딱 가르치는 것만, 그림 수업만 하면 좋겠어요. (웃음) 


Q.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 잘 맞으신가요?

A. 잘 맞아요. 처음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가르치는 일이 직업 비슷하게 되어버리기도 했어요. 그래도 보람을 많이 느껴요. 

Q. 주로 언제 가장 보람을 느끼시나요? 

A. 제가 지도하는 방향대로 아이들의 그림이 성장될 때 보람을 느껴요. 
그림이 성장한다는 것은 단지 기술이 성장한다는 의미가 아니에요. 그림은 손으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그리는 거예요. 조금 더 고차원적으로 접근하면 ‘생각’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죠.

Q. OpenArts Space MERGE?머지에 전시를 보러 오시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제 그림은 어려운 그림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처음에 말씀 드린 것처럼 저의 그림은 대의담론이라든지 현대미술의 가치, 미술사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니 편안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서명을 할 때 년도를 쓰지 않아요. 저는 제 그림을 보면 언제쯤 그렸는지 알 수 있거든요. 저는 철저하게 ‘현실’을 그리는 작가라고 보시면 돼요. 저의 그림에는 제가 현재를 살아가면서 느끼고 생각하는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그림을 보시면서 ‘허필석이라는 사람이 지금 생각하고 느끼고 있는 감성을 보고 있다‘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번 전시에 왜 이렇게 일본에 관련된 그림이 많지? 라는 생각이 드신다면 ‘허필석 작가가 현재 일본에 관련된 일을 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되는 거죠. 
전시를 보면서 관객에게 무엇을 요구한다는 자체가 관객에 대한 모독이라고 생각해요. 저의 이야기를, 저의 일기장을 훔쳐본다고 생각하시고 그림을 보시면 좋겠어요. 



네 긴 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곧 그간 발표되지 않던 작품들을 중심으로 초대전이 시작됩니다.
개인적으로 뜻 깊은 전시가 되길 바라면서 이상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
초대전은 부산에 위치한 복합문화예술공간OpenArts Space MERGE?머지에서 2018년 7월 14일부터 26일까지입니다.
많은 관람부탁드리며, 미술작가에게 지속적으로 작업할 수 있는게 만드는 가장 큰 힘은  대중들의 관심이 큰 몫을 한다고 생각됩니다.
앞으로 허필석작가 기억해 주시고 많은 관심과 격려 부탁드립니다.

                                                                                        인터뷰 – 정현영 OpenArts Space MERGE? 큐레이터
[이재웅 기자 dlwodnd33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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