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에서 터진 행위예술 폭탄이 시민을 위무하다

기사입력 2022.08.25 11:22 조회수 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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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체는 책이 망치이거나 폭탄이어야 한다고 했다. 필자는 여기의 을 현대미술이란 단어로 바꿔도 된다고 생각한다. 현대예술은 우리의 감성과 생각을 흔들리게 하고 자신이 파괴될 만큼의 태풍 같은 변화를 몰고 오는 것이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배적 가치에 균열을 내고 우리의 근본 뿌리까지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것이 현대미술이고, 행위미술은 그보다 더 강렬함이 있어야 한다.

또한,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는 마사지다라는 주장을 빌려 예술은 마사지다라고 말하고 싶다. 예술이 태풍이되 태풍이 지나간 후엔 개운한 마사지를 받은듯한 느낌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예술이 우리를 편안하게 위무해주는 것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지만, 필자는 예술이 폭탄 같은 충격을 주되, 우리 몸을 건드리고 어루만져, 정서적 변화, 몸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부드러운 마사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밀양에서 펼쳐진 “Good Morning, Artist?”라는 주제의 [2022 Internet 12h Live Performance] 행위 페스티벌/행위예술 폭탄은 코로나로 지친 시민들에게 보드라운 마사지가 되었기를 기대할 만큼 좋은 작품들이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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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치 <고로 존재한다>

 

인지하는 모든 순간의 존재 증명

홍명섭은 현대철학의 예술적 사용에서 나는 감각한다 따라서 나는 존재한다라고 정의한다. “내가 (먼저) 있기 때문에 무엇을 행한다고 생각하는것이 당연한 상식과 진실처럼 보였지만, 이제는 감각과 인지 행동을 통해서 내가 구성되는 존재라 하며 세계 속의 나라는 주체를 형성하는 것은 나의 의식이 아니라 나의 몸씀이라는 감각 행위라 했다. 생각이 몸의 감각과 같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장내 미생물이 뇌와 연동되어 있고, 장내 건강이 뇌 건강(정신병)과 연동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지는 요즈음 그 정의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덧붙이자면 우리의 인지행위, 지각이란 정적인 정신 현상이 아니라 몸의 운동이라는 베르그송의 입장도 홍명섭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 내용에 동의하는 필자도 왕치처럼 외쳐본다. “나는 온 몸으로 인지/지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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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성 / <인지(Recognition)>

 

감각 놀이,‘행위자와 관객의 신체적 공동 현존

조은성 작품의 후반부에 신체적 공동 현존의 세 조건이 다 이뤄졌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이 공동으로 현존했다는 것이다. 현존은 현재 살아있음이다. 현재 살아있음을 자각하는 것이다. 그 순간순간의 자각이 존재의 한 가운데 있게 하는 것이다. 참여자들 모두는 존재(살아 있음)의 한 가운데서 작은 피부의 떨림도 인지되는/하는 각성의 기쁨 속에 있었을 것이다.

작품 전반부, 관객들에게 몸 감각 체험하기 같은 내용을 같이 해나간 것은 후반부의 현존 쾌감을 제대로 맛보게 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된다. 참여자들 모두가 즐겁고 행복해했다. ‘행위자와 관객의 신체적 공동 현존의 모범사례 같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인간이 감각하는(느끼는)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 체감하게 됐고 지각하는 현존이 얼마나 의미 있나를 알려주었다. 행위미술의 매력을 증명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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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홍재 /  <오직 평화>

 

평화를 위한 기원제

12 지신을 다 쓴 후, 그 종이를 말아서 간지와 간지를 연결한다. 12 간지 안에 있는 우리는 작가의 말대로 나와 너 우리가 되므로 그들을 서로 연결하게 하는 것이다. 어깨동무를 시키는 것이다. 시간이나 방위가 12간지 안에 다 연결되어 있듯이, 사람들끼리도 끈끈이 연결되어 있음/되어야 함을 재차 확인시키는 것이다. 작가는 서로서로 연결된 우리가 서로 화합하며 어울렁더울렁 살아가자고 외치는 것이다. 그리하여 12간지의 중심에 오직 평화라는 글귀를 쓴다. 모두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기원하며. 평화를 위한 기원, 그 순수한 숨결은 순하고 착한 사람들의 가슴으로 넓게 넓게 파장을 그려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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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웅 / <청실홍실

 

소리, 그 울림/진동으로 내면의 춤을 끌어낸다

첫 등장의 <밀양 아리랑>에서부터 임태웅의 소리는 그 공간을 완전히 장악했다. 요즘 말로 공간을 찢었다. 오로지 소리의 울림과 진동으로 행위 공간을 청각적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노래가 장악한 청각적 공간에서 노래를 부르는 자는 소리를 통해 세계--존재하는 신체임을 호소하고 그 소리는 그 소리를 지각하는 사람의 세계--존재하는 신체에 말을 건다.” 그 발화된 소리가 듣는 자에게 지속적 접촉을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소리가 흉곽에 공명하고, “지각하는 자와 지각되는 것 사이에 끊임없는 교환(에리카 피셔-리히테, 수행성의 미학)”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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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 / <비터스윗>

 

소통,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다룬 성인 동화의 한 꼭지

행위자는 자기 몸에 쓰인 이름들을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동작을 보인다. 기억은 선택적이다. 기억되는 것도 있고 되지 않기도 한다. 또한, 같은 일을 겪어도 기억도 제각각이다. 기억이 다른 것은 상황을 보는 관점이 다르고 해석이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이 보고 싶은/보이는 부분만 본다는 것이다.

이 작품은 소통과 관계의 어려움 속에서 살아가는/생존하는 단편 극을 보는 듯하다. 또한, 아버지와의 연유로 선택된 사탕이 발단되어 펼쳐진 잔잔한 성인 동화의 한 꼭지 같은 작품이었다. 예쁜 색들이 자유로이 노니는 작가의 회화작품들을 모아 놓은 그림 동화책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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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 <우리가 망한 것을 알고 있어요그러니까 키스해요>

 

신선한 환기가 주는 예술적 쾌감

<우리가 망한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키스해요>라는 작품 제목은 이 세대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그대로 드러낸다.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의 탐욕, 그것 때문에 발생했을지도 모르는 코로나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 보았다. 그리하여 서로서로 비난하고 마음까지도 격리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 예견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며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뜨겁게 입술을 맞추고 격렬하게 사랑하는 것이 현재의 자신들이 할 역할이라는 관점인 것이다. 이 젊은이의 싱싱하고 생동감 있는 세상 살아가기에 박수를 보낸다. 뜨겁게 사랑하시라. 젊음은 그리 길지 않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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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호 / <GAIA 가이아>

 

현대예술은 망치이거나 폭탄이다

이 작품은 행위미술의 특성인 일회성, 현장성, 우연성, 반복 불가능성, 예측 불가능성이 잘 표출되었으며, 설치요소가 중심이 되어 시각적 쾌감을 많이 준 작품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설치중심적 작품을 ‘Informance’(설치미술 Installation+행위미술 Performance Art)라고 쓴다(작가가 만든 단어임)고 했다.

하지만 행위미술의 주요한 매력인 행위자와 관객의 신체적 공동 현존이 불쾌감이 동반된 신체적 공동현존이 돼버렸다는 점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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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능경 / <나는 내가 무겁다>

 

일상성, 유사성/동일성, 지속성의 힘

유사/동일성, 유사한 행위를 반복하는 것은 여여한 우리 삶의 반영이다. 매일 밥 먹고 똥 누고, 잠자며 하루하루 똑같은 삶을 살지만, 매번 새롭게 느끼면서 사는, 그런 우리네 삶의 통찰에서 나온 것이다.

지속성, 몇십 년간 유사/동일한 행위를 지속했다는 그 자체가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같은 것을 반복해왔다는 새로움 말이다. 그것도 수십 년간 해왔기에 가치가 더해지는 것이다. 숫자를 계속 써나간 로만 오팔카의 <무한 회화>를 떠올리면 왜 새로운 것이라 할 수 있는지 이해될 것이다.

이 행위는 비슷비슷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그런 똑같아 보이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게, “그게 바로 삶이다라고, 세월이 축적된 몸으로 말하는 것이다. 또 특별할 것도 없는 삶이 바로 특별한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이런 메시지들이 담긴 작품에 누가 똑같은 작품 한다고 비난의 화살을 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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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환 / <행위는 몸짓이 아니라 발언이다>

 

탐욕의 위정자들에게 날리는 평화 폭탄

이 철원통은 하얀 면도크림으로 그려진 평화 기호의 한가운데 일직선으로 높이 세워졌다. 하얀 뒷배경에 묵직하게 서 있는 철원통은 독특한 아우라를 뿜어냈다. 평화 기원탑이며, 이 시대의 기념비이며, 우크라이나 전쟁과 미얀마 쿠데타와 코로나로 숨진 이들에 대한 추모비이다. 기록될만하고, 해야만 하는 멋진 설치작업이다. 행위의 흔적으로 만들어진 작업 중에서 간만에 멋진 작품을 보았다. 설치미술로서의 공간장악 하는 힘도 있지만, 조형적, 미적쾌감도 굉장히 좋았다. 여건이 되면 그대로 오랫동안 전시했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위의 어느 쯤, 머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자. 작가는 관객에게 카드를 달라고 해서 머리의 땀들을 긁어내었다. 땀을 수건으로 닦는 것은 보았으나 카드로 긁는 것은 처음 봤다. 그렇게 많은 땀이 카드의 면을 따라 주르륵 흘러내리는 모습은 작은 시각적 충격이었다. 공연으로 보자면 막간 쇼 같은 것이었으나 일상을, 살아있는 현재를 그대로 보여주는 실연이었으므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생동하는, 상호교감 예술의 현장이 아닌가. 이런 것이 행위미술만이 할 수 있는 진정한 라이브예술이 아닌가. 또한, 그만이 할 수 있었다는 것과 진솔한 인간 유지환을 날 것으로 드러냈다는 점과 웃음을 유발했다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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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연 / <Say Goodbye to Corona>

 

우아하게 외친다, “잘 가라! 코로나

서수연은 경륜이 많지 않으면서도 조용하고, 담백하게 작품을 펼쳤다. 하얀 사기그릇에 정갈하게 담긴 동치미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이었다. 기교를 부리지 않은, 여백 많은 담백한 수채화 같았다.

코로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담담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그 관점들을 교환해보는 작업이었다. 마스크 없는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모든 이들의 바람이 있는 현시대의 풍경화 속에서 작가는 우아하게 외친다. “잘 가라! 코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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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선 / <애도를 표합니다>

 

물 표면, 그 가장자리를 떠도는 영혼

이 작품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이 떠오른다. 소설같이 절대 보기 싫은 형상이 아니지만, 이전에 우리가 보지 못했던 어떤 형상으로 변신을 한 것이다. 파리처럼 행동하니 파리라 할 수도 있으나 작가의 입장처럼 굳이 무엇이라 명명하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것은 일상적 우리의 모습이 아닌 어떤 변신을 했다는 것이다.

서동욱은 차이와 타자라는 책에서 조화롭게 질서 잡히고 체계화된 통일된 유기체적 전체에 대항하여 이질성, 비연속성, 파편적 개별성을 드러내는 것이 예술의 기능이라 했다. 문재선이 분한 형상과 행위는 이질적이다. 무엇보다 뒷면에 빙빙 도는 움직임이 있는 이러한 외형을 갖추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예술적 역할을 수행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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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백 / <메신저-Sond of Korea>

 

분노의 예술 화염병을 던진다

짧은 행위에, 거대한 서사가 들어있게 잘 구성된 이 작품은 홍콩에서, 미얀마에서, 우크라이나에서 민중들의 생명이 고통스럽게 죽어 나가고, 자유로운 생명의 존엄이 하릴없이 짓밟혀나가는 이 상황들이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천둥 같은 목소리로 그만 멈추라라고 강력하게 발언하는 것이다. 인명 경시, 인권 파괴자들의 가슴에 분노의 예술 화염병을 던지는 것이다. 그 화염병이 그들을 활활 태워서 없애버리고, 그 자리에 숨져간 이들을 위로하는 붉은 꽃이 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색색의 꽃잎들이 너울너울 온 세상을 다 덮어 꽃잎이 떨어진 자리마다 자유, 평화, 행복이 번져 나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마지막 부분에 온 힘으로 손바닥 도장을 찍는 행위는 <동양평화론>을 집필한 안중근 의사의 손바닥 도장이 떠올려진다. 이 행위는 아픔의 역사를 몸 전체로 각인하는 것이며, 고통을 온몸으로 함께 나누겠다는 표식이며, 평화와 자유 세상에 대한 확고한 의지의 표상이며, 끝까지 싸워나가겠다는 확고한 신념의 표출인 것이다.

 

  이렇게 풍요한 사유들을 안겨주는 예술작품을 또 어디가서 볼 수 있으랴? 28일까지 밀양아리랑아트센터(055-359-4527) 전시실을 찾아가면 동영상으로 이 행위미술의 감동을 맛볼 수 있다.

 


[이혁발 기자 art3396@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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